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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나무

♥ 진실농원 ♥ 2007. 9. 22. 19:44
우리의 전통 칠은 옻나무 진에서 얻어지는 옻으로 짙은 적갈색을 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금은 없어져 버린 칠 공예의 한 기법으로 황금빛이 나는 황칠(黃漆)이 있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의 빛을 낼 수 있는 황칠은 바로 황칠나무에서 얻어진다. 황금으로 도금한 것 같다하여 아예 금칠(金漆)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황칠은 중국 쪽에 더 잘 알려졌다. 계림지(鷄林志)라는 고문헌 에,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나고 본래 백제에서 산출된다. 절인(浙人)은 신 라칠이라고 부른다'하였으며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백제 서남해에 나며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고 휘황한 광채는 눈을 부시게 한다'하여 삼국 시대부터 귀중한 특산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황칠을 직접 구하기 어려웠던 발해는 서기 777년 사신 사도몽을 보내어 일본 황칠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는 원나라에서 황칠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여러 번있었다. 원종 12년(1271) 왕은 '우리나라가 저축하였던 황칠은 강화도에서 육지 로 나올 때 모두 잃어버렸으며 그 산지는 남해 바다의 섬들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역적들이 왕래하는 곳이 되었으니 앞으로 틈을 보아서 가져다가 보내겠다. 우선 가지고 있는 열 항아리를 먼저 보낸다. 그 역즙(瀝汁)을 만드는 장인은 황칠이 산출되는 지방에서 징발하여 보내겠다' 하였으며 이 어서 충렬왕 2년(1276)과 8년(1282)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가 져다 주었다.

조선왕조 때는 정조 18년(1794)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 '완 도의 황칠은 근년 산출은 점점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하는것이 해 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 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이 되고 있습니 다. 과외로 징수하는 폐단은 엄격히 규제하여황칠나무 Dendropanax morbifera Lev. 사진입니다. 영원히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황칠은 이와 같이 200여년 전만 하여도 널리 재배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백성들이 심기를황칠나무 꺼려하여 차츰 맥이 끊겨 버렸 다. 최근 전통 황칠을 다시 살리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남부 지방의 해변과 섬 지방에 자라는 늘푸른 넓은 잎 큰 나무로 키가 15m에 이른다. 껍질은 갈라지지 않아 매끄럽고 어린 가지는 초록빛이며 윤 기가 난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처음에는 3-5개로 갈라지나 나이가 먹으면 긴 타원형에 톱니가 없는 보통 모양의 잎만 남는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6월에 흰빛으로 피며 타원형의 열매는 30~40여개씩 공처럼 모여 달리 고 10월에 검은빛으로 익는다.

이 나무에는 우리나라 천 여종의 나무에서 오직 자기만 갖고 있는 '수평 수지구(水平樹脂溝)'라는 세포가 특징이다. 황칠이 고귀한 만큼이나 나무 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함인지 모른다.

황칠은 음력 6월쯤 나무줄기에 칼로 금을 그어서 채취한다. 매우 적은 양이 나오며 처음에는 우유 빛이나 공기 중에서 산화되어 황색이 된다. 황 칠을 하면 금빛을 띠고 있으면서도 투명하여 바탕의 나뭇결을 생생하게 보 여준다. 금빛을 더욱 강하게 내기 위하여 먼저 치자 물을 올린 다음 황칠 로 마감하기도 한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sjpark@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