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교수의 나무이야기 . 11] 능수버들

가지가 아래로 운치 있게 늘어지는 큰 버드나무에는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이 있다. 봄에 새가지가 나올 때 적갈색인 것은 수양버들, 황록색인 것 은 능수버들이다. 두 나무는 너무 비슷하여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구분이 어렵다. 어느 쪽인지 정확한 판별은 전문가의 몫이고 우리는 늘어지는 버 들을 수양버들보다는 더 낭만적인 능수버들로 알고 있어도 크게 틀림이 없 을 것 같다.

능수버들은 경기민요 가락에 나오는 흥타령 천안삼거리를 연상하게 만든 다.

'천안삼거리 흥/능수야 버들은 흥/제멋에 겨워서 흥/축 늘어졌구나 흥...' 이 짧은 구절에서 우리는 능수버들의 모양새를 짐작하고도 남으며 어깨를 들먹일 춤판이 금세 벌어질 것 같은 감흥에 사로잡힌다.

천안시 삼룡동에 있는 '천안삼거리'는 능수버들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 설이 있다. 옛날 한 홀아비가 능소(綾紹)라는 어린 딸과 가난하게 살다가 변방의 군사로 뽑혀 가게 되었다. 그는 천안삼거리에 이르자 어린 딸을 더 이상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주막에 딸을 맡겨 놓기로 했다. 그리곤 그는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고 딸에게 이르기를 '이 나무가 잎이 피면 다시 이곳에서 너와 내가 만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후 어린 딸은 곱게 자라 기생이 되었으며 미모가 뛰어난데다가 행실 이 얌전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마침 과거를 보러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와 인연을 맺었고 서울로 간 그는 장원급제하여 삼남어사가 되었다. 박 어사는 임지로 내려가다가 이곳에서 능소와 다시 상봉하자 '천안삼거 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이라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였다.

마침 전쟁에 나갔던 아버지도 살아서 돌아와 능소와 다시 만날 수 있었 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곳의 버드나무를 능소버들 또는 능수버들이라 부르 게 되었다 한다.

능수버들은 벌써 삼국시대부터 임금님도 좋아하던 나무였다. 삼국사기 백제 무왕 35년(634)조에는 '3월, 대궐 남쪽에 못을 파서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사면 언덕에 버들을 심고, 물 가운데 방장선산을 흉내낸 섬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오늘날 부여읍 남쪽에 있는 궁남지(宮南池) 를 일컫는다.

조선후기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東闕圖)에 보면 지금의 창경궁 영춘문 앞 도로 건너편과 종묘 쪽 궁내에 여러 그루의 능수버들이 보인다. 경복궁 경회루 옆에는 지금도 능수버들이 자라고 있으며 조선의 궁궐 여 기저기에 많은 능수버들이 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의 활쏘기 명인이라면 윌리엄 텔이고 우리나라의 명궁이라면 태조 이성계를 꼽는다. 그 탓에 조선왕조 때는 임금이 참가한 활쏘기가 흔히 있 었으며, 최고의 명궁은 늘어진 능수버들의 잎을 맞히는 것이다. 말이 그렇 지 엄지손가락 너비만한 능수버들 잎을 활로 맞힌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 고, 많은 버들잎 중에 어느 잎이 맞았는지 찾아내는 방법도 없다. 아마 그 만큼 정확해야 한다는 상징의 의미였을 것이다.

비슷한 나무에는 수양버들 외에 용버들이 있다. 용모양의 버들이란 의미 인데 늘어지기는 마찬가지이나 어린가지는 물론 상당히 굵은가지까지도 용 이 승천하는 그림처럼 꾸불꾸불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출처 : 나무이야기11 - 능수버들
글쓴이 : 금송 윤은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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